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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전을 논하기 전에 한국 게임의 '창세기'를 짚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지금처럼 한국이 게임 강국이 된 것은 기적에 가깝다. 게임을 미래 혁신 산업으로 보고 적극적으로 육성하는 다른 나라들과 달리 한국 사회는 게임을 상당히 배타적으로 취급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게임 자체를 사회악으로 보는 인식이 강했다. 오락실은 문제아들의 온상이고, 게임은 그들의 학업에 방해가 되는 약물로 취급된다.
그만큼 초창기 한국 게임 개발 환경은 척박했다. 당시 사회에서는 게임 개발자로서의 직업 자체가 인정받지 못했다. 게임을 만드는 것에 대해 사람들은 '그걸로 먹고 살 거야? '라고 빈정대며 나를 깔봤다. 공부를 열심히 해서 자녀를 일류대학에 보낸 부모들이 게임회사에 취직해 도시락을 싸서 말리는 시절이었다. 하지만 환경이 가혹할수록 창작자들의 창작에 대한 열정은 더욱 불타올랐다. 그들은 [울티마]와 [드래곤 퀘스트]와 같은 외국 게임들을 부러워하며 바라보았지만, '우리도 게임을 만들자'는 각오로 일어났다. 사회의 냉랭함 속에서 한국 게임이 싹트고 있었다.
1987년에 첫 번째 과일이 마침내 나왔다.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남인환이 제작한 [신검전설]이 개봉했다. 그는 [울티마]의 팬으로서 이 프로그램을 독학하여 한국 최초의 애플용 RPG를 개발하였다. 당시 애플 컴퓨터 보급률이 낮고 저작권 개념이 희박해 큰 돈을 벌지 못했다. 그 후, 1993년에 한국 최초의 PC RPG[홍길동전]가 발매되었다. 하지만 일본 RPG에 비해 부족한 점이 많아 반응이 좋지 않았다.
1994년에는 국내 경기의 또 다른 이정표가 세워졌다. 손노리의 [아스토니시아 스토리]가 개봉했다. [Astonishia Story]는 한국 RPG의 봄을 가져온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당시 [울티마], [Is] 등 외국 RPG는 언어 장벽 때문에 국내 이용자들이 쉽게 즐길 수 없었다. 이때 등장한 본격 한국어 RPG에 대한 반응이 뜨거웠다. 게임의 스토리를 100% 이해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축복(?)을 받았습니다. 손노리의 독특한 유머와 감동적인 스토리는 외국 게임에 버금갔다. 이후 RPG는 한국 게임의 주류 장르로 자리 잡았다. [아스토니샤 스토리]에 신검이 싹트게 된 한국 게임이 뿌리를 내렸다. 그리고 창세기 이전까지 계속되면서 훌륭한 결실을 맺었습니다. 기성세대를 마약(?) 게임으로부터 지키려던 고등학생이 한국 게임의 역사를 시작하게 된 것은 아이러니하다.
한국 게임 산업 초창기에는 인재가 많이 몰리는 인적이 드문 무림 같았다. 외국의 걸작들이 한국 창작자들의 창의력을 일깨웠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쉽지 않았다. 국가의 지원은커녕 이들을 받아들일 수 있는 게임회사도 없었다. 결국 게임 지망생들은 PC커뮤니케이션 동호회를 중심으로 커뮤니티를 형성했다. '히텔', '천리안', '지금 누리'와 같은 PC 통신은 한국 게임 개발자들의 발상지였다.
[제네시스]를 만든 최연규 소프트맥스 이사도 PC통신으로 만난 지인들과 게임 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책을 좋아해서 어릴 적 꿈이 동화작가였다고 합니다. 대학 입학 후, 그는 하이텔에서 '게임 시작'이라는 동아리를 결성하고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제네시스 워의 핵심 개발자들은 대부분 '게임 스타트'에서 만났다. 연구 결과 MSX용 '메탈 기어'를 PC에 이식해 좋은 반응을 얻었다. 자신감을 얻은 최연규 감독이 본격적으로 게임을 만들기로 했다.

최 이사는 뜻이 맞는 사람들을 모아 '갑인물산'이라는 회사에 입사했다(공식 채용이 아니라 사무용 임대일 뿐). 소프트맥스의 전신인 '갑인물산'은 비디오 게임기 공급 업체였다. 하지만 경영난으로 회사가 문을 닫자 당시 대리인으로 일하던 정영원 씨(현 소프트맥스 대표)가 퇴직금 3000만 원으로 회사를 인수하고 발전을 이어갔다. 기획을 담당하는 최연규 이사, 게임그래픽을 담당하는 전석환 부장, 게임프로그래밍을 담당하는 조영기 상무 등이 주축이다. 그들은 회사명을 소프트맥스로 바꾸고 첫 작품으로 [리크니스]를 개발했습니다.
두 번째 작품으로 하늘을 나는 슈팅 게임 [스카이 앤 리카]가 출시됐지만 큰 호응을 얻지 못했다. 이번에도 회사는 경영난에 빠졌습니다. 최 감독은 마지막 카드인 RPG를 개발하기로 했다. 그러나 개발 기간이 길고 비용이 많이 드는 RPG는 리스크가 큰 프로젝트였습니다. 정영원 대표는 고심 끝에 최연규 감독의 의견을 받아들였다. 결국 그들이 회사를 세운 이유는 제대로 된 한국 RPG를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다. 회사의 허가가 나자 프로젝트가 순식간에 진행되었다.
처음에는 [울티마]와 같은 RPG를 만들려고 했지만 내용이 너무 방대해서 일본식 SRPG로 하기로 했습니다. 대신 이 게임은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다양한 하위 문화를 담고 있다. 예를 들어, 창세기 전투는 한국 무술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실제로 최연규 감독은 하이텔의 '무림동'에서 만난 소설가 용대운(대표작 [건림천하])에게 조언을 구하기도 했다.
최 감독도 "게임 개발자가 아니었으면 무술가가 됐을 것"이라고 말할 정도로 무술 마니아다. 또한, '불륜', '사랑', '배신', '복수'와 같은 드라마의 요소들이 추가되었다. 등장인물들의 얽히고 설킨 관계는 현대적 배경만 바꾼다면 아침드라마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깊다단하다. 실제로 팀원들은 농담으로 최씨를 불륜 작가로 지칭했다고 한다. 최 감독 자신도 "(이야기를 만들 때) 남녀의 성적 관계에 초점을 맞췄다."
이처럼 [제네시스]는 무협, 공상과학, 판타지, 역사, 문학, 심지어 TV 드라마 등 다양한 장르의 소재가 어우러진 게임이다. 외국 게임을 모방하기보다는 한국인의 일반 감성을 자극하는 말들이 담겨 있다. 이런 진부함 때문에 일부 사용자들이 [창조]를 표절 작품이라고 오해하고 있지만, 이는 너무 억지스럽다. 쿠엔틴 타란티노의 [킬 빌]이 B급 쿵푸 영화의 오마주이듯 제네시스 워즈는 일본식 RPG에 한국적인 정서를 담은 독특한 게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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